전기포트 하나를 들여놓고도 건강한 습관은 쉽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커피를 줄이려 바꾸고, 우엉차를 마시려 준비하고, 감기 기운에 따뜻한 물을 떠올리면서도 여전히 실천은 미뤄지는 중년의 마음을 담담하게 적은 에세이입니다.

몇 년 전 사무실에 전기포트를 하나 샀습니다.
믹스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배도 점점 나오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 먼저 프림과 설탕이 없는 인스턴트커피로 바꿨습니다. 그러고 얼마쯤 지나서는 카페인도 영 마음에 걸려 디카페인으로 옮겼고, 기왕이면 몸에 덜 미안한 쪽을 고른답시고 유기농이라고 붙은 제품까지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꿔 마셔도 제 방식은 늘 비슷했습니다.
농도는 언제나 아재 스타일 숭늉커피였습니다. 연하게, 아주 묽게 타서 수시로 마셨습니다. 그렇게 마시면 왠지 덜 자극적일 것 같았고, 괜히 몸에도 조금은 나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정말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마시면, 바쁜 사무실 한쪽에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몸을 챙기고 있다는 기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새 포트를 샀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 달랐습니다. 이제는 살도 좀 빼야겠고, 몸도 챙겨야겠고, 나이도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전보다 더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볶은 우엉을 우려 마시기로 했습니다. 커피보다야 낫겠지, 습관을 조금만 바꾸면 몸도 조금은 가벼워지겠지, 그런 기대가 있었습니다. 우엉차라는 말에는 왠지 중년의 결심 같은 것이 묻어 있습니다. 이제는 진짜 몸을 생각해야 한다는 늦은 자각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최근에는 감기 기운까지 있어서 집에 포트를 하나 더 샀습니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면 좋을 것 같았고, 차도 끓여 마시고, 몸을 좀 제대로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대개 생활부터 바꾸기보다 물건부터 삽니다. 아직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먼저 앞서 가서, 마치 준비가 끝난 사람처럼 살림 하나를 들여놓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박스는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1주일이 넘도록 그 포트는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장면이 어쩐지 제 마음을 닮은 것 같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는 말도 알고, 커피를 조금 줄이고 차를 마시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압니다.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늘 다릅니다.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진짜인데, 몸은 그 마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니, 몸보다 먼저 생활이, 귀찮음이, 익숙한 습관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건강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꽤 자주 원합니다. 문제는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행동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엉을 사는 일까지는 됩니다. 포트를 고르는 일도 됩니다. 박스를 뜯는 일도 됩니다. 그런데 물을 끓이고, 우엉을 넣고, 그걸 꾸준히 마시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결심은 늘 앞쪽에 있고, 실천은 늘 뒤쪽에 있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이런 장면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몸은 점점 더 챙겨야 하는데, 몸을 챙기는 데 필요한 부지런함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젊을 때는 무심하게 살아도 어느 정도 버텼는데, 이제는 그러기엔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감기 기운만 돌아도 예전보다 오래 가고, 한 번 무너지면 회복도 늦습니다. 그러니 마음은 더 다급해집니다. 이제는 진짜 챙겨야지. 이제는 바꿔야지. 그런데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박스째 놓인 포트를 보고 있으면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저 물건은 분명 건강을 위해 산 것인데, 아직 건강과 아무 상관도 없는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그냥 새 물건일 뿐입니다. 쓰이지 않는 결심의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요. 잘 살아 보겠다고, 몸을 돌봐 보겠다고 들여놓았지만, 아직은 상징으로만 남아 있는 물건. 그 모습이 우습고도 조금 서글픕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포트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저는 아직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아예 포기한 사람이라면 포트도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엉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뜻한 물을 마셔야겠다는 마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박스째 놓여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는 해도,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실천은 늦었지만,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중년의 삶이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창한 실패가 아니라, 소소한 미루기의 반복. 아주 나쁜 선택이 아니라, 아주 좋은 습관을 끝내 시작하지 못하는 날들의 누적. 사람은 그렇게 크게 망가지기보다, 작게 게을러지면서 천천히 흐트러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새 포트 하나가 들어와도, 그 물건이 한동안 박스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건강은 늘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당장 오늘 밤 한 잔 덜 마시는 일, 물을 끓여 차를 우려내는 일, 따뜻한 물 한 컵을 챙겨 마시는 일처럼 아주 가까운 데서 시작되는 것인데도, 마음은 자꾸 그것을 큰 결심의 영역으로 밀어 올립니다. 그래서 시작은 더 늦어집니다. 건강해지는 일은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어야 하는데, 저는 자꾸 작은 실천보다 큰 마음부터 가지려 합니다. 그러니 늘 마음은 앞서고 몸은 제자리에 머뭅니다.
그래도 아마 조만간 그 포트를 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아니어도, 내일은 물을 한 번 끓여 볼지 모릅니다. 우엉을 넣고, 컵에 따라 보고, 한 모금 마셔 보면서 괜히 늦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실천은 원래 조금 늦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박스째 두던 물건을 어느 날 한 번이라도 꺼내 쓰는 일일 것입니다.
건강해지고는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이 말은 어쩌면 저만의 말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물건을 사고,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적어 두고, 또 며칠쯤은 그대로 두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 이 조금 우스운 장면을 너무 심각하게만 보지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인정은 하려 합니다. 나는 아직도 건강보다 귀찮음을 더 자주 선택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면서도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또 분명히 있구나.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모순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지고 싶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달라지고 싶지만 익숙한 쪽으로 다시 돌아가고, 몸을 생각해야 할 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하루는 또 대충 넘깁니다. 그래도 그 사이 어딘가에 포트 하나쯤은 사 두는 사람.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사람. 저는 지금 아마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 포트는 당분간 제 게으름의 증거이면서도, 동시에 제 작은 희망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박스 안에 잠시 들어가 있을 뿐,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믿어 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 다음에 공부해서 [노후 건강 지킴이-건강차 마시기]를 정리 해서 올려 보겠습니다.
중년의 실천은 원래 조금 늦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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