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진아 사모곡을 듣다가 문득 울컥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아직은 남의 이야기 같지만, 언젠가 내가 부르게 될 노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행가, 특히 흔히 뽕짝이라 부르는 트로트는 가끔 이상할 만큼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순간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조금 과장된 것 같던 가사가 어느 날 갑자기 가슴속으로 들어옵니다.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을 노래가 먼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입니다.
태진아의 <사모곡>이 오늘은 그렇게 들렸습니다.
앞산노을 질때까지 호미자루 벗을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배적삼 기워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한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한평생 모진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빌어
학 처럼 선녀 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었을 바치리까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빌어
학 처럼 선녀 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었을 바치리까.
어버이날이 다가와서 그럴까요.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노래가, 오늘은 유난히 마음에 걸립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은 엄마가 있고, 전화를 걸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같이 생활하지 못하는 엄마라서, 마음 한쪽에는 늘 조용한 미안함이 남아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멀어진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거리가 생기면 마음도 조금씩 느슨해집니다.
바쁘다는 말, 피곤하다는 말, 다음에 가겠다는 말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늦게 가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이 노래가 더 아프게 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됩니다.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요.
얼마일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훗날 어느 순간, 이 노래가 그냥 듣는 노래가 아니라
내가 부르게 될 어머니 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너무 당연했습니다.
늘 있는 사람, 늘 기다려주는 사람, 늘 걱정해주는 사람.
그래서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자꾸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효도라는 말이 달라집니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
별일 없냐고 묻는 전화 한 통.
이런 것들이 쌓여서,
훗날의 나를 덜 울게 해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모곡〉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하지만 지금 이 노래를 듣는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 엄마를 부를 수 있고, 아직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이 노래는 슬픔이 아니라 작은 다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이 노래를 부르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오늘 태진아 사모곡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효도는 멀리 있는 큰일이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전화 한 통.
밥 한 끼.
한 번 더 보는 얼굴.
어쩌면 그것이,
훗날 눈물 속에서 나를 조금은 덜 미안하게 해줄
가장 현실적인 효도일 것입니다.
'생활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며 ―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1) | 2026.05.13 |
|---|---|
| 늙었기에, 이제는 AI를 생각하게 됩니다 (0) | 2026.05.08 |
| 전에는 약상자였고, 이제는 약창고입니다 (0) | 2026.05.03 |
| 건강해지고 싶어서 포트를 샀는데, 아직 박스째입니다-좋아지고 싶은 마음과 움직이지 않는 몸 사이 (0) | 2026.05.01 |
| 밀양 금시당 백곡재 산책 - 가을 은행나무보다 조용했던 봄·여름의 푸른 여행지 (1) | 2026.04.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