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다 보면, 거울 속에 앉아 있는 사람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전의 내 얼굴은 조금씩 멀어지고,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거울 속에서 가족의 시간을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 속 얼굴이 점점 낯설어집니다
미장원 의자에 앉아 거울을 봅니다.
가운을 두르고, 목에는 수건을 감고, 머리는 반쯤 젖어 있습니다. 미용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자르는데, 정작 저는 거울 속 얼굴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분명 제 얼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 낯섭니다.
이마는 더 넓어졌고, 눈가에는 힘이 빠졌고, 입가에는 예전보다 오래 머문 선들이 보입니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얼굴은 더 또렷하게 나이를 드러냅니다.
머리를 자를 때마다 나이를 확인하게 됩니다
머리를 자르는 일은 원래 단순한 정리였습니다.
길어진 머리를 다듬고, 조금 깔끔해지는 일. 젊을 때는 미장원에 다녀오면 ‘어때, 괜찮나?’ 하는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산뜻함보다 확인이 먼저 옵니다.
아,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
이 얼굴이 이제 내 얼굴이구나.
머리는 짧아졌는데, 나이는 더 선명해진 느낌입니다. 괜히 거울을 오래 보게 되다가도, 또 오래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득 어떤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문득 어느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를 두고 “아버지를 닮은 소녀”라고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빠를 닮은 소녀' 였네요. 엄마는 자연스러운데 아빠는 ㅎㅎ)
처음 들었을 때는 참 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인데 소녀이고, 그런데 또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 시간의 순서가 한 문장 안에서 뒤섞여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미장원 거울 앞에 앉아 있으니 그 말이 조금 이해되었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얼굴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얼굴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잘려 나가고, 거울 속 얼굴이 점점 정리될수록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젊은 날의 아버지가 아니라, 제가 기억하는 늙어가던 아버지의 얼굴이었습니다.
눈매가 닮았고, 입가가 닮았고, 가만히 있을 때의 표정이 닮았습니다.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아니, 닮았다는 말을 들어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됩니다.
아, 내가 아버지를 닮았구나.
그 사실이 반갑기만 한 것도 아니고, 싫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 조용해집니다. 내가 흘려보낸 세월과 아버지가 지나온 세월이 거울 속에서 잠깐 겹친 느낌입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닮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젊을 때는 닮았다는 말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나고,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세대의 습관, 말투, 표정, 고집 같은 것들과 나는 다르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차이가 조금씩 흐려집니다.
문득 내 말투에서 아버지가 나오고, 내 표정에서 아버지가 보이고, 내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미장원 거울 앞에서 본 것은 단순히 늙은 제 얼굴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얼굴 안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언젠가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무리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며, 저는 거울 속에서 점점 낯선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낯선 사람은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있었고,
세월이 있었고,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머리를 자르고 나오는 길,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쓸쓸했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래된 얼굴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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