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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록

이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부릴 것인가

by Old-Newbie 2026. 6. 5.
AI 글쓰기를 직접 경험하며 느낀 거부감과 오류, 그리고 예상 밖의 도움까지. ‘이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부릴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글쓰기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담담한 에세이입니다.

이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부릴 것인가

AI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거부감이 먼저였습니다.

문장은 매끄러웠지만 어딘가 기계적이었습니다. 말은 맞는 것 같은데 마음에는 닿지 않았습니다. 교과서 같은 말투, 지나치게 정돈된 문장,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느낌. 읽으면서도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더 난감한 것도 있었습니다. 사실인 것 같다가도 빈 자리를 그럴듯하게 메워 넣습니다. 틀렸다고 단정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온전히 믿기도 어렵습니다. 거짓말이라 하기엔 교묘하고, 사실이라 하기엔 어딘가 석연찮은 문장들이었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좀 위험한 물건이구나.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글을 다듬다가 문법이 헷갈리는 문장이 생겼습니다. AI에게 맞는 표현인지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틀렸다고 했습니다. 틀린 이유까지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다른 표현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AI가 맞다고 내놓은 문장이 오히려 더 어색했습니다.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우리말답지 않은 문장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원래 문장이 맞았습니다. AI가 영어 문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었습니다. 우리말에는 우리말의 결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방식으로 고쳐 버린 것입니다. 틀렸다고 지적받은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원래대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 녀석은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믿되, 확인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자꾸 손이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손이 갔습니다.

몇 번 써보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이 가끔 엉뚱한 것을 내놓는다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문장을 툭 던지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말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틀릴 때가 많지만, 그 틀림 속에 쓸 만한 조각이 섞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잘만 쓰면 나쁘지 않겠다.

마중물처럼 글을 시작하게 했다

그 생각을 굳힌 날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향 마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막상 시작하려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몇 년째 미뤄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냥 한번 던져봤습니다. “이런 마을이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그랬더니 AI가 제법 쓸 만한 첫 문장을 몇 가지 내놓았습니다.

정확히 제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마중물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펌프질을 시작하게 해 주는 그 한 바가지의 물.
AI가 딱 그 역할을 했습니다.

느린 손을 대신해 준 초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저는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독수리 타법입니다. 손가락 몇 개로 한 글자씩 찍어 나가는 속도입니다. 생각은 이미 앞서 가는데 손이 따라가질 못합니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다 만들어 놓고도, 막상 입력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습니다.

예전에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습니다.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도, 시작이 쉽지 않았습니다.

AI는 그 부분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생각을 말로 던지면 형태를 만들어 줍니다. 느린 손을 대신해 초고를 빚어 줍니다. 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분량을 이제는 조금 덜 힘들게 풀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도구를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피하기보다 다루는 쪽으로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AI 없이 못 산다고.

과장이 섞였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영역에 AI가 들어와 있고, 글쓰기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나의 충복으로 만들 것인가.

결국 운영자는 사람이다

AI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틀릴 때가 있고, 엉뚱할 때가 있고, 빈틈이 있습니다. 그냥 믿고 쓰면 위험하고, 그렇다고 내버리기엔 아깝습니다.

결국 문제는 AI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같은 도구를 써도 결과가 다른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뱉은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것과, 그것을 손봐서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AI는 글을 대신 써 주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을 빠르게 형태로 만들어 주는 도구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완벽을 기대하지 않고, 틀린 부분은 걸러내고, 쓸 만한 것만 남기면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쪽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운영자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방향을 정하는 것도, 판단하는 것도, 책임지는 것도 끝내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합니다.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

저는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조금 믿고, 조금 의심하면서. 조금 맡기고, 많이 고치면서.

아마 이 과정 자체가, 새로운 글쓰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